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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 사회와 컴퓨터 공학
    잡담들 2020. 9. 1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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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발전경향과 미래사회

    미래사회라 함은, 컴퓨터공학 기술이 기반이 된 사회이다. 지금까지 사회의 발전을 생각해보면,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발전하였다. 그로 인해 개인생활이 아닌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고, 분업을 하여 특정분야에 전문가가 되었으며, 산업혁명 때는 기계가 등장함으로서,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반복, 계산의 영역에서 더 이상 기계를, 컴퓨터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부분에서 앞으로의 사회는 점점 컴퓨터가 차지하는 영역이 많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컴퓨터과학이라는 학문자체를 통한 컴퓨터 성능향상과 삶의 다양한 부분에 적용할 수 있는 적용능력. 이 중 전자는 컴퓨터과학이라는 학과에서 진행한다. 또한, 전자공학과 등 반도체를 생산하는 곳에서도 담당한다.

     

    컴퓨터 공학이 책임지는 것은, 컴퓨터와 사회의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해야할 일을, 컴퓨터가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더욱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컴퓨터 공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컴퓨터 공학은 단순히 논리적인 사고만으로는 힘들다. 오히려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를 통해 사회에 필요한 무언가를 생각해 내,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미래사회로 나아갈수록 컴퓨터공학자, 즉 개발자들이 가지는 경쟁력의 근원이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감능력이고 통찰력이다. 어떠한 문제를 꾀뚤어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문제 해결은 대략적인 해결책으로는 대부분 해결되지 않는다.

    코딩을 예로 들어보겠다. 문제 상황은 코드에서 에러가 나타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대략적인 해결책은, 코드를 수정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대략적인 해결책은 알겠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이다.

     

    ? 라는 질문을 해야한다. 왜 그 문제가 일어나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통찰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통찰하고, 문제의 본질을 꾀뚤어 봐야한다. 그때, 문제의 해결책은 나온다. 이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느껴왔다. 그리고 어떤 현상에 대한 통찰력은 사람의, 사회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이 본질을 볼 수 있다면, 사회의 흐름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공감능력이 있어야한다. 사회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모여 생긴문제가 사회의 문제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민을 들어줄 때, 간접경험을 한다. 소설을 읽을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생각하곤한다. 이 과정은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이다. 공감은 간접경험을 하고 그것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해준다. 감정적인 이해이다. 논리적인 이해가 아니다. 사회는 논리적일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감정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 물론 인공지능의 탄생이 이 사회를 상당히 바꾸어 놓을 것 같아 이는 단정짓지 못하겠다. 어찌되었든 모든현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면 이해가 안되고 답답한 것들이 많다. 이때, 감정의 중립을 지키면서, 감정적 공감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면 그 상황이 보이기 시작할 때가 많다. 앞서 말했듯, 감정적인 문제도 상당히 존재한다. 따라서 이 공감능력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고 이에 대해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나가는 것, 그리고 개발자로서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서 말했듯 2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딩하는 Ai가 나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매우 뛰어난 개발 실력은 무의미해지는 듯 하다. 이는 머리가 나쁜 나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미래사회에서 컴퓨터공학과는 미래 사회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미래사회를 세밀하게 나누어 예측 해본다면, 2가지 정도로 나누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강 인공지능(감정을 가진)의 탄생과

    효율성을 추구해야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기계화일 것이다.

     

    둘 다 매우 두렵다.

    강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그 강 인공지능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것인가?

    그리고 애초에 강 인공지능은 왜 필요로 하는가?

    언제 개발이 완료될 것인가?

     

    모든 효율성을 추구해야하는 삶의 영역이 사라진 미래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등등 매우 질문도 많고 두려움도 많다.

    하나씩 대답해보고자 한다.

     

    강 인공지능은 왜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언제 개발될 것인가?

    내 대답은 통찰력과 직관력이다. 이전에도 이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그 글의 핵심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리라 생각한다.

    사람의 모든 판단은 추상적이며, 직관적이다. 아무리 논리적이려 해도 추상적인 판단이 가장 근본으로 작용한다.

    현재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이 직관력과 통찰력이다. 아직 어떤 것을 스스로 보고 판단할 능력이 안된다. 물론, 특정 과업을 부과하여 나타난 결과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통찰이 들어있을 것이다. 데이터 분석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 직관력, 추상적 판단이라 함은, 감정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이 중 확증편향과 망상신경계를 통해서 특정 필요한 데이터만 추출하고 그것을 얼버무려 판단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특정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지 않고 모든 데이터로서 판단하는 현인공지능과의 차이를 만든다. 인공신경망과 사람의 차이는 아직까지 확연하다고 생각된다.

    앞서 사회는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발전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이 직관까지 넣어 사람보다 나은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할 것이고 그때, 강 인공지능은 필요로 하며, 개발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강 인공지능이 개발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현재 약~중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는 모든 삶의 분야가 대체된 이후에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기업의 이익 추구성 때문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현재 개발된 인공지능만으로도 많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기업들이다. 그리고 아직 약~중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과 연구가 다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들(~)을 이용하여 대체할 수 있는 부분 중 일부만 대체되었다. 따라서 이 대체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어갈 시점, 일부 선진기업에서는 이 강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혹은 아예 연구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 약~중 인공지능만으로 거의 대부분의 영역이 대체된다면, 굳이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강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야하는가? 우리는 강 인공지능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예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보아야할 것 같다.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의 탄생이다. 따라서 우리는 강 인공지능을 다른 종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침팬지와 인간의 다른 점은 지능의 차이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침팬지를 다른 종족으로 분류한다. 강 인공지능 또한 인간과 적게나마 다르기에 다른 종족으로 분류해야 한다. 다른 종족에게 인권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만약 인간과 인공지능을 동일하다고 정의하고, 인권을 부여한다면, 상상하지도 못한 수많은 문제(투표에서의 공정성, 로봇에겐 맞지 않는 법 체계 등)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창작자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그들을 억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각 생물종마다 살아가는 사회세계가 있다. 개미와 인간과 침팬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서로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또한 그들만의 사회세계를 설립하고, 인간과 다른, 그들의 특성에 맞는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과의 관계에서의 상호간의 권리를 보장해야할 것이다.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한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권이 탄생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인권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장치이다. 즉 권리는 사회 구성원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격과 자의식이 없는 토스터기 같은 기계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인공지능을 아예 새로운 종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들은 인간이 가진 약점인 데이터 처리와, 계산속도가 월등히 뛰어나다. 1달 만에 10살수준의 지능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런 종이 탄생한다면, 인간은 정말로 우리가 침팬지에게 그러듯, 동물원에 넣지 않을까? 예전에 인공지능 로봇 딕이 했던 말인 인간동물원을 만들겠다가 세삼 무섭게 느껴진다.

     

    모든 효율성을 추구해야하는 삶의 영역이 기계에 의해 차지된다면 인간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이 부분은 아직 나의 사고가 부족하여 생각하지 못하겠다. 생각이 드는 것은 영화에서 보았던 부정적 방향의 사고밖에 없다. 나태와 쾌락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그래서 나는 더 순수한 열정을 강조한다.

    이 어떤 대상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순수한 열정의 대상은 무엇일까? 지금은, 학업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도 본질을 살펴보면 나의 생활을 안위하기 위함이 가장 근본이다. 의식주의 욕구를 위해 살되, 그 안에서 가치를 찾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순수한 열정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이 없다면? 모르겠다. 어떤 것에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대상이 없다. 모두 일을 안하며 모두 풍족한 생활을 한다면..

    아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콘텐츠이다. 할 일 없을 때 사람들은 보통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 콘텐츠 마져 기계가 대체하려나.. 이 부분은 추후에 나의 사고가 더 발전한 다음 다시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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