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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일, 좋아하는 것, 취미, 교육. 그리고 나와 디지털노마드.
    잡담들 2021. 12. 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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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기 전에

    아래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사견입니다. 다만 글쓰기의 편의를 위해 단정적인 어조로 쓴 경향이 다소 큽니다. 이 점 유의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사회경험 적은 한 학생의 글에 불과합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글의 주장과 관련하여 나누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꼭 댓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저만의 생각이 검증될 유일한 기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현대사회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에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본다.

    개인주의가 대두되어가고, 역설적이게도 SNS등의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자유로워지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그들의 생각을 존종해가고 있다.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는 니체의 승인의 도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승인의 도덕은 나의 욕망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라며 이루기 쉬운 것 혹은 현재 내가 처한 상태가 행복이라고" 합리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상대의 욕망또한 승인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민주주의가 이러한 주인도덕을 해치는 최악의 위기상황의 근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필자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적용되지 못한 범주가 존재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특히 그러하다. 바로 일과 취미에 관련한 부분이다.

    절대적인 의견은 없으니, 남의 의견을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기는 것에는 발전을 이루었으나, 정작 우리 각자가 성취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는 이러한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는 상대와 비교하며 우월감을 바탕으로 행복의 척도를 설정하는 듯하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가보자.

     

    우리는 어떻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가? 이상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는 교육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공교육.

    교육적 평등을 외치는 시대이다.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대표적으로 수능이 존재한다.

    자 생각해보자. 평가받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평등인가?

     

    오히려, 우리가 각자의 경제상황 등과 관련없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평등이 아닐까? 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았다면,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초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

    생애의 행복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후자가 맞을 것이고, 산업발전과 경제력, 돈벌이가 교육의 목적이라면 전자가 맞을 것이다.

    필자는 대학이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의 이러한 관점이 불필요하고, 나아가 대학을 젊은 나이에 가야한다고 여겨지는 관점또한 불필요하다고 아니, 바뀌야야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여, 대학의 수업을 이수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진학하는 분위기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하고싶은 것을 찾은 상태에서, 그것만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대학의 진학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만일 그것으로 경제활동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최소한 적성이라도 맞는 분야)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취미, 여가활동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면 된다.


    이 관점에서 대학은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있는 뜻 그대로의 대학수학능력평가(절대평가) + 해당 학과 적성 평가(절대 혹은 상대) + 해당 학과를 목표로 한 동기(필요하다면)

     

    * 이때의 적성 평가는, 성향 평가 + 해당 대학의 수업에 맞는 학과 수학능력평가의 두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저야할 것이다.

         - 해당 대학의 학과 수학능력평가 : 해당 대학이 기초부터 가르치는지, 어느정도 건너뛰고 가르치는지(이에 맞게 대학을 이수하는 기간(지금은 4년, 약 130학점이지만..)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난이도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 결과적으로 모든 대학을 졸업한 후, 학생이 가진 지식은 동일해질 것. : 이를 위해 학과의 각 분야(컴공으로 따지면, C, 파이썬, 객체지향 등)별로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비대면 영상 강의를 만들어 동일하게 제공하고, 각 대학 교수들은 이해를 돕는 역할. (어차피 지금도 최상위 대학들은 자신들의 강의들을 코세라 등 온라인으로 풀고 있다..)

         -> 학벌 존재x. 모두가 같은 것을 배움. 대학별 차이는 얼마나 오랜기간을, 얼마나 많은 학점을 듣는가. 이후 능력(소통, 산업의 능력(컴공으로 보자면 코딩 능력, 프로젝트 경험 등))으로 평가 -> 채용 등.

     

    이에 일환으로, 대학의 교양을 고등학교때 가르친다. : 고등학교 기간이 짧다. 4, 5년정도로 늘리자.

     

    * 이때의 동기는 더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자신이 어떠어떠한 분야를 시도해보았고, 그 중에서 이 분야가 적성(이 또한 구체적으로 표현이 가능할 것)에 맞다. 또 이 분야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등 그 사람만의 대체불가능한 이야기와 사실과 경험을 근거로 한 검증.

    이때,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적성에 왜 맞다고 생각하는지를 적게한다.

    또 이 동기부분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들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자기소개서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Pass/Fail로 적용하며 자신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학부터 바뀌어야하고, 이후에 고등학교가 바뀌어야할 것이다.


     

    지금의 교육은 산업에 알맞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듯하다.

    특히 고등학생,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난 학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확고한 꿈을 가지도록 강요받는다. 실제로는 그것을 위해서 해준 것이 거의 없는데도 말한다.

    이진경 교수가 말했듯이, 우리는 실제로 해보지 않고서는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곳이 공교육이 아니한가?

    그리고 이렇게하여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하며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열광하는 공리주의도 만족한 것이 아닌가?

    국가라는 조직이 국민의 행복에 관여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한다면 필자는 공교육을 진행하는 시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대학을 진학하는 시기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고교과정에서 지금 하고 있듯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함과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나아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찾게 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가. 유망한 산업에 인력을 꽂아넣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가?

    대학에서는 자신이 미래에 할 것을 바꾸기가 어렵다. 고교까지의 공교육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본다.

    종종 대학교 게시판에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나아가 공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오곤한다. 그들이 노력을 안한 것인가?

    아니, 그들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운이 나빳을 뿐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 적성과 맞는 행운이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러하지는 못한다.

    배우고 싶은 것보다 대학 간판에 더 초점을 두는 사회이니 그럴 가능성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이상적인 상황에 대해 갈망하는 내용을 적어보았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자.

    이 글을 쓰기 앞서 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후견인이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다"라는 글을 보았다. 동의한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 르네상스 시대에는 돈많은 집안이 예술가, 철학가 등을 후원해주었고 그렇기에 그렇게 사화/문화/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알고있다.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스스로의 후견인이 될 수는 있다. 교수님 강의 중 프란츠 카프카와, 필리프아리에스와 같이 조금씩이나마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나가고 본업으로는 못삼더라도 취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취미로 삼던 중, 이것이 현재의 업과 비슷한 혹은, 자신이 원하는 정도로 경제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 업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요일날 힘들다는 이유로 수동적인 휴식을 취하곤 한다. 니체가 비판하는 수동적인 행복이다. 니체 이야기는 청자에게는 익숙치 않을 수 있으니 여기서 언급을 멈추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것또한 이진경 교수가 말한 또 다른 형태의 '다른사람의 행복'에 속하는 것 밖에 불과하다.

    그런말이 있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되면 괴로운 것이 되어버린다고. 이것이 이진경 교수가 말한 터널 중 하나가 아닐까. 덕업일치가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휴식시간을 수동적 행복으로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다. 오히려 이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미래에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능동적인 행복을 추구해야할 것이다. 필리프아리에스와 같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여가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으로 사용한다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 다양한 족(?)이 이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파이어족, 디지털노마드 등등..

    파이어족이 되어, 자신이 경제력을 위한 업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후견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노마드가 되어, 일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방법은 많이 존재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또,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갭이어라는 것도 존재한다. 1년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운이 매우 좋은 편이다.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였고, 이 분야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분야이다. 또, 1학년이지만 곧 자그마한 서비스 정도는 런칭할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입은 적겠지만, 스스로의 후견인이 될 수 있다. 나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지금의 스스로의 후견인이라 함은, 심적인 부분이다. 지금 당장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여 생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심적으로, 대책없이 막무가내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이 아니라, 기본은 만들어두고 찾는다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때와 올해(대학교 1학년 때) 놀기보다, 런칭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쌓는 노력을 한 가치가 생기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빨리 사업해서 돈벌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가치가 더 생겼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나 더 찾기. 내 취미와 여가생활로 만들기. 사실 올해 초부터 이것에 대한 필요는 느껴왔다. 나는 지금 껏 코딩을 나의 취미로 가져온 사람이었다. 그러다 올해 초 외주를 하게 되었고 이때 다른 취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였다. 실제로 해보는 것은 없으면서 이게 좋은가 저게 좋은가 생각만하고 있었다. 이게 취미를 찾는 방법인줄 알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후견인이 될 수도 없었다.

    이제는 이 탁상공론 대신 이진경 교수가 말한대로 직접 실천해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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